이제서야 위헌결정이 나다니 놀랄 따름이다.

세계적 랭킹의 '독재자'들(박정희, 김일성, 김정일)이 즐비하고, 그 자녀들이 통차하는 한반도~~~ 한민족은 '독재'를 즐기나 보다!!!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 해방이라는 뜻밖의 소식이 만주의 서쪽 변방인 열하에 복무하던 박정희에게 전해진 것은 8월 17일이었다. 박정희는 같은 부대에 있던 만주군관학교 선배들인 신현준 상위와 이주일 중위(5.16 쿠데타 후 최고회의 부의장)등과 상의하고 북경으로 가기로 했다. 이들이 9월 21일 경 북경에 도착했을 때는 그 주변지역 일본군에 복무하던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당시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의 일본군에 복무하는 10여만 명의 조선인을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중국이나 연합국 측의 미국은 이 계획에 무관심했고 임시정부가 10여만 병력을 무장시키고 조직화할 능력은 없었다. 어쨌든 박정희가 도착한 북경에는 최용덕을 광복군 지대장으로 한 북평잠편지대가 설치됐고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광복군에 들어갔다. 그가 광복군에 들어 간 것은 그 독립정신이나 이념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단지 해방된 한반도에서 광복군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찾아 들어간 것이다. 거기다 아무 연고도 없는 중국 땅에서 귀국을 모색하는 가장 좋은 방책이기도 했다. 남로당 가입, 5.16쿠데타, 유신쿠데타로 사실상 '반란3관왕' 박정희의 네 번째 변신은 광복군과 함께 국내로 들어 와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 국군 장교가 된 후 극좌 공산주의 세력인 남로당의 군사부 프락치가 된 일이다. 박정희의 형 등 가족들은 그가 안정적인 교사직을 버리고 출세한답시고 만주로 건너갔다가 거지꼴로 돌아 온 그에게 차가왔다. 그 중 둘째 형 박상희는 친일의 죄를 씻으라며 조선경비사관학교 입학을 권유했다. 김종필의 장인이기도 한 박상희는 46년 10월 구미지역에서 농민봉기를 주도하다가 경찰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